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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선수] 에릭 칸토나 Eric Cantona - 맨유를 다시 일으킨 ‘킹 에릭’의 전설

레드데블giggs 2025. 5. 14. 00:37

[그때 그 선수]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추억의 선수를 알아보는 포스팅입니다. 

시작으로 모든 팬층에서 맨유 레전드로 뽑히는 Eric Cantona 에 대해서 적어봤습니다.

Eric Cantona
Eric Cantona

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운명을 바꾼 남자

1992년, 에릭 칸토나는 리즈 유나이티드를 떠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다. 당시에는 큰 이슈가 아니었지만, 이 이적은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유는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칸토나의 합류로 팀은 중심을 잡고 곧바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맨유 팬들은 이 프랑스 스트라이커를 '킹 에릭(King Eric)'이라 부르며 숭배하기 시작했다.

 

2. 경기장을 지배한 예술가

칸토나는 단순한 골잡이가 아니었다. 그의 플레이는 예술에 가까웠다. 감각적인 퍼스트 터치, 창의적인 패스, 그리고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 한 방은 상대 수비수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는 143경기에서 64골을 기록했고, 그 중 다수는 경기의 흐름을 단숨에 뒤바꾸는 명장면이었다. 깃을 세운 유니폼과 자신감 넘치는 몸짓은 팬들의 뇌리에 각인되었고, 그만의 상징이 되었다.

 

3. 논란과 전설 사이

에릭 칸토나는 재능과 함께 위험 요소도 안고 있었다. 1995년,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 상대팀 팬에게 쿵푸킥을 날린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고, 그는 9개월 출장 정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복귀 후 그는 다시 팀을 이끌며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비판조차 그의 전설에 일부가 되었다. 오히려 팬들은 그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천재’로 기억하게 됐다.

 

4. 짧았지만 강렬했던 여운

1997년, 칸토나는 30세라는 이른 나이에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많은 팬들이 충격을 받았지만, 그의 은퇴는 마치 한 편의 예술 영화처럼 강렬했고, 여운을 남겼다. 칸토나는 맨유의 상징, 그리고 프리미어리그 시대를 연 영웅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축구를 넘어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그의 존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클럽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커리어 스탯 (1992–1997)

기본 기록

출전 수: 185경기 (모든 대회 기준)

득점 수: 82골

도움 수: 약 62도움 (비공식 추정치, 당시 정확한 어시스트 통계는 제한적)

포지션: 세컨드 스트라이커 / 공격형 미드필더

등번호: 7번

주요 우승 타이틀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 (1992–93, 1993–94, 1995–96, 1996–97)

FA컵 우승: 2회 (1993–94, 1995–96)

커뮤니티 실드 우승: 3회 (1993, 1994, 1996)

※ 1994년에는 FA컵+리그 더블 우승 달성

개인 수상 및 영예

PFA 올해의 선수: 1994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팀: 4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올해의 선수: 1996

프랑스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02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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